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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내 안락사 제도: 존엄한 죽음의 합법화

작성자 하수민 인턴 날짜 2024-02-22 01:04:17 조회수 4140

지난 5일, 드리스 판아흐트 네덜란드 전 총리가 그의 부인과 함께 동반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생전 뇌출혈로 인해 건강이 심하게 악화되었던 그는 삶의 자기결정권을 행사한 것이지만, 안락사에 대한 유럽 내 여론과 국가들의 제도는 천차만별이다. 안락사에 대한 유럽 내 동향을 간단히 살펴본다.

 

본문

지난 5일, 드리스 판아흐트 네덜란드 전 총리가 자택에서 동갑내기 부인과 동반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그와 그의 부인 외제니 여사 모두 93세 일기로 별세한 것으로, 생전 사이가 각별했던 총리 부부는 함께 손을 잡은 채로 죽음을 맞이하였다. 판아흐트 전 총리는 기독민주당(CDU) 소속으로 1970년대 정계에 발을 들인 뒤 법무장관을 역임하였고, 이후 1977년부터 6년간 네덜란드의 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그는 2019년 팔레스타인 추모 행사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뒤 건강이 심하게 악화되었고, 그런 그를 간호해야 했던 부인의 건강 역시 매우 나빠진 상태였다고 한다. 판아흐트 전 총리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교리가 아닌 삶의 자기결정권을 선택하여 죽음을 맞이하였다.[1]

판아흐트의 출생국이자 그가 생을 마감한 곳인 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국가이다. 뇌 또는 심장 계통의 불치병을 앓고 있고, 신체적 또는 정신적 고통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지속되는 환자에 대해 안락사를 허용한다. 의료진이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약물을 직접 투약하는 ‘적극적 안락사’와 환자 본인이 의료진에게 약물을 받아 죽음에 이르는 ‘조력 자살’ 모두 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그 고통이 참을 수 없고 지속적인지, 환자가 오랜 기간 죽음을 원한다는 의사를 밝혀왔는지 등 전문가와 의료진이 총 6가지의 요건을 엄격히 평가한 뒤에만 안락사가 행해질 수 있다.[2] 현재 네덜란드는 안락사를 12세 이상에게만 허용하지만, 지난 4월 12세 미만 불치병 아동에 대한 안락사 또한 허용하도록 법을 개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하였다.[3] 2022년 한 해 네덜란드의 안락사 수는 8,720건으로 전년도에 비해 약 14% 증가했고, 그 수가 전체 사망자 수에서 차지하는 비율 또한 4.5%에서 5.1%로 증가했다.[4] 이러한 추세를 참고하였을 때, 네덜란드의 요건이 완화된다면 그 수치는 더욱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유럽 국가 중 가톨릭의 영향이 강한 이탈리아와 포르투갈은 안락사 문제에 대해 네덜란드와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2021년 이탈리아 내 안락사 합법화를 추진한 한 시민단체가 시민 100만 명의 서명을 받아 국민투표 청원서를 냈으나, 헌법재판소는 심리 끝에 ‘존엄하게 죽을 권리’ 보다 ‘생명 존엄성’을 더욱 중요하게 판단해 이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포르투갈의 경우 의회가 안락사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대통령이 안락사가 허용되는 환자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5]

그러나 반대로 유럽 내에서 가장 최근에 적극적 안락사를 합법화한 국가는 인구의 과반수 이상이 가톨릭 신자인 스페인이다. 보수적인 여론이 강했는데도 이와 같은 법 개정이 가능했던 것은 ‘라몬 삼페드로’ 사건 때문이었다. 삼페드로는 1968년 바다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목이 부러져 몸 전체가 마비되어 일상생활이 완전히 불가한 상태였고, 안락사를 위해 스페인 법정에서 30년간 다퉈왔다. 이를 계기로 스페인 내 안락사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게 이어진 결과 2021년 심각하고 만성적인 불치병을 앓고 있는 등 엄격한 조건을 충족하였을 경우 환자가 합법적으로 안락사를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6]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안락사 합법화보다도 진정제 투여 등으로 환자의 고통을 완화할 수 있는 완화의료와 호스피스 제도가 우선적으로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전세계적으로 임종을 앞둔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는 의료 서비스는 굉장히 미흡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완화 치료가 필요한 환자 중 약 14%만이 완화 치료를 받고 있으며,[7]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작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임종 관리 서비스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무척 불평등하게 주어진다. OECD는 해당 보고서에서 국가가 임종 돌봄 정책을 더 중요한 의제로 삼고 더 많은 환자를 아우를 수 있는 포괄적인 정책을 고안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8]

함의

안락사에 관한 논의는 유럽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지난 1월 우리나라에서도 60대 척수염 환자 이씨가 조력사망을 허용해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낸 바 있기 때문이다. 그는 끊임없는 통증에 시달리느라 자신의 행복추구권과 자기결정권이 침해당하고 있으며, 인간의 존엄성은 살아있는 인간의 존엄성뿐만 아니라 죽음의 존엄성까지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헌재는 비슷한 취지의 헌법소원에 대해 기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각하한 바 있으나, 이번에는 해당 문제에 대해 본격 판단하여 조력사망 제도를 입법화하지 않은 것이 위헌인지 따져볼 예정이다.[9]

누군가에게는 안락사가 불법이라는 금기의 압박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고, 또한 누군가에게는 사회가 고통에 대한 답을 죽음에서 찾게 되고 말 것이라는 압박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두 의견은 양극단에 놓여있지만, 결국 죽음은 당하는 것이 아닌 맞이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관점이 둘을 관통한다.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고, 또 어떤 방식으로 환자들의 존엄이 보호되어야 할지 치열한 의논이 필요한 시점이다.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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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수 민, Yonsei-EU JMCE 인턴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국제대학 사회정의리더십학과 학사과정
문의: 02 2123 8156 | soo.ha@yonsei.ac.kr

Works Cited

[1] S. Boztas. (2024, Feb 10). Duo euthanasia: former Dutch prime minister dies hand in hand with his wife. The Guardian. Retrieved from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4/feb/10/duo-euthanasia-former-dutch-prime-minister-dies-wife-dries-eugenie-van-agt
[2] Euthanasia in the Netherlands. (2017, Nov 24). Vita. Retrieved from https://www.alliancevita.org/en/2017/11/euthanasia-in-the-netherlands/
[3] Reuters in The Hague. (2023, Apr 14). Netherlands to broaden euthanasia rules to cover children of all ages. The Guardian. Retrieved from https://www.theguardian.com/society/2023/apr/14/netherlands-to-broaden-euthanasia-rules-to-cover-children-of-all-agesa
[4] Number of reported euthanasia cases in the Netherlands from 2000 to 2022. (2023, Sep 13). Statista Research Dapartment. Retrieved from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1363041/netherlands-euthanasia/
[5] 조은아. (2023. 04. 29). “존엄한 죽음은 기본권”… 유럽국가들 잇따라 안락사 합법화. 동아일보. Retrieved from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30428/119065253/1
[6] A. Goodman. (2021, Mar 18). Spain approves euthanasia law. CNN. Retrieved from https://edition.cnn.com/2021/03/18/europe/spain-euthanasia-law-scli-intl/index.html
[7] Palliative care. WHO. Retrieved from https://www.who.int/health-topics/palliative-care
[8] Time for Better Care at the End of Life. (2023). OECD. Retrieved from https://www.oecd.org/health/time-for-better-care-at-the-end-of-life-722b927a-en.htm
[9] 네덜란드 전 총리 부부, 손 잡고 '안락사'…불 붙는 '존엄한 죽음' 논쟁. (2024. 2. 13). JTBC. Retrieved from 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2165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