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동향

지난 1일, 유럽연합 27개국은 브뤼셀에서 열린 특별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4년간 500억 유로(약 72조원)을 추가 지원하는 것에 합의했다. 500억 유로 가운데 330억 유로는 대출 형태로, 나머지 170억 유로는 원조 형태로 지원될 예정이며, 우크라이나의 전후 피해복구와 재건에 쓰이게 된다.[1] 이번에 타결된 다년간 지출예산(MFF) 증액개편안 이에 대해 유일하게 반대했던 친러시아 성향의 헝가리가 정상회의 당일 거부권을 철회하면서 극적으로 이루어진 ‘반짝합의’이다. MFF는 작년 6월 EU 집행위원회가 처음 제안하였고, 지난달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26개국이 개정에 동의하였으나 헝가리의 반대로 결국 최종합의가 무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날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이번 특별정상회의를 앞두고 "오르반 총리가 동참하든, 하지 않든 간에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등 EU의 ‘플랜 B’ 시행까지 암시되기도 하였다.[2]

결국 극적으로 이루어진 합의에 대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EU 이사회가 우크라이나의 편에 서겠다는 유럽의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다며”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EU의 단결력을 강조했다.[3]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역시 “다시 한번 우크라이나에 대한 강력한 EU의 단결이 증명됐다”며 EU의 결정을 환영했다.[4]

그러나 정작 EU는 이번 합의 전후로 끊임없는 혼란을 겪고 있는 모습이다. 헝가리가 막판에 반대를 철회한 구체적인 배경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는데, 이를 두고 집행위원회가 헝가리와 모종의 ‘거래’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정상회의 이전 헝가리의 동결자금 해제 등이 논의되었냐는 질의에 “없다”며 논란을 일축했지만, 지난 12월 EU 정상회의에서도 이와 비슷한 지적이 있었다.[5]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협상 개시’ 안건에 완강히 반대하던 헝가리를 달래기 위해 집행위원회가 동결했던 100억 유로(약 15조원)을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해당 자금은 EU가 헝가리 사법부의 독립성 훼손 등을 문제 삼으며 동결했던 300억 유로 중 일부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결국 표결 직전 오르반 총리가 퇴장하며 기권을 선택하였고, 나머지 26개국 정상이 만장일치로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협상 개시를 승인하였다.[6] 유럽의회는 이에 대해 집행위원회가 헝가리의 자금동결을 추가로 해제할 경우 ECJ에 제소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히기까지 한 상황에서, 이번 합의에 집행위원회와 헝가리와의 또다른 거래가 있었다면 EU 기구 간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7]

헝가리의 우크라이나 안건에 대한 줄타기를 두고 회원국 간 분열이 일기도 한다. 유럽의회에서는 “헝가리의 EU 투표권을 제한하자”는 청원서가 나오면서 반 헝가리 여론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청원서에는 헝가리가 EU의 핵심 가치를 위반하기 때문에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고, 전체 의원 705명 중 5분의 1에 해당하는 120명이 서명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EU 내 같은 친러시아 국가 슬로바키아의 로베르트 피초 총리는 “우크라이나 지원 반대를 이유로 EU가 헝가리를 처벌하려 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었다.[8]

또 한편 독일과 프랑스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두고 EU 내 주도권을 다툰다는 분석 또한 나오고 있다. 지난 16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우크라이나에 70억 유로(약 10조원)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하자 프랑스 출신인 티에리 브르통 EU 내수시장 담당 집행위원이 “독일의 행동은 EU의 다자간 매커니즘에 의해 규제되지 않고 있다”며 계획 시행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9] EU의 지난한 안건 합의 과정, 헝가리 배제안, 그리고 강대국의 주도권 싸움까지, 유럽의 ‘단결’ 뒤에는 가려지지 않는 큰 혼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