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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13일 유럽연합(이하 EU)은 반도체 설계·조립·포장 공정의 높은 역외 의존성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반도체법 (Chips Act)’를 제정했다. 반도체법 시행을 통해 EU는 10%대에 머물러 있던 유럽의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릴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글로벌 반도체 시장 지평 변화가 예상되는 바, 한국의 유동적 대응이 필요하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의 주요 핵심 기술인 반도체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반도체 기술은 일상 생활에 필요한 각종 제품을 만드는 것을 넘어 산업, 국방 영역에도 필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반도체 기술 확보와 안정적인 공급은 각 나라의 핵심 이익과 결부된다.
유럽은 세계 반도체 수요의 약 20%를 차지하며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체 수요 시장이지만 한편, 반도체 생산에 있어서 유럽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10%에 불과하다. 리소그래피 기술에 기반한 반도체 미세 공정 기술과 이를 활용한 반도체 제조 장비는 세계 시장의 약 23%를 점유하고 있고, 일부 원자재 수급엔 강점이 있으나, 반도체를 제3국에 위탁 생산하는 ‘팹리스 (fabless)’ 방식의 채택은, 역내 생산 역량을 약화시키고 반도체 생산 역외 의존도를 높인 원인이 되었다[1].
COVID-19는 이러한 유럽의 소비-생산 체인에 첫번째 난관이었다. 교역로가 막히며 공급망이 교란되고, 이에 따른 반도체 생산 국가의 반도체에 대한 자국 우선주의 심화는 곧바로 EU 역내 반도체 수급 불균형으로 이어졌다. 잇따른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심화로 반도체 핵심 소재인 실리콘과 웨이퍼 공급에 적신호가 켜졌고 EU 역내 반도체 생산 역량 증대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2].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지난 4월에 반도체를 전략적 이익으로 규정하고 관련 법을 제정하기로 합의했고, 9월에 유럽의 반도체 의존성 탈피를 위한 방침을 담은 반도체법 (Chips Act)’을 제정했다.
반도체 생산량 증가와 공급망 안정을 골자로 하는 반도체법은 크게 ①유럽 반도체 이니셔티브 (Chips for Europe Initiative)를 설립, 역내 반도체 설계 및 생산 역량을 강화하고 ②반도체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는 ‘EU 내 최초 도입되는 생산시설 (통합 생산설비 및 개방형 파운드리)’에 대한 보조금 지급 프레임워크 마련 ③ 공급망 위기 관리 체계 구축과 위기 단계 비상 조치 등을 규정한 EU 내 조정 메커니즘으로 구성되어 있다[3].
이처럼 EU는 430억 유로 (한화 62조 원) 규모의 공공·민간 투자 및 역내 협력을 통해 2030년까지 반도체 세계 시장 점유율 20%를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생산성 증대와 공급망 안정, 그리고 회원 국들의 협력을 통해 반도체 생태계 강화와 글로벌 경쟁력 제고, 안보 강화,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디지털 전환을 꾀하고 있다.
EU가 의도한대로 반도체법이 시행된다면 그 효과는 광범위할 것이다. EU 집행위는 반도체 공급에 있어 역내 협력을 넘어 한국, 미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 등 반도체 주요 국가들과 역외 협력 체제 역시 염두에 두고 있다. 더불어, EU집행위는 반도체 밸류 체인 전반에 걸친 자체적인 환경·보안 기준과 인증 절차 제정 및 이를 국제 표준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4]. EU가 반도체법을 통해 가시적인 목표를 달성하고 유럽산 반도체가 글로벌 시장에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면, EU가 차기 반도체 시장의 표준을 리드하는 주체로 등장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이 대목에서 기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맹주인 한국은 EU의 움직임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현재 유럽엔 한국 반도체 기업의 생산 시설이 없다. EU 반도체법이 역외 기업에 대한 명시적 차별 조항을 담고 있지 않기에 단기적으로는 한국이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은 적다고 평가되나[5], 중장기적으로 EU의 제조 경쟁력이 높아지면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역시 반도체 생산 역량 강화 및 지속적 모니터링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기술 격차 확대의 노력과 특히 EU의 반도체 원자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 한국도 안정적인 원자재 수입 루트를 확보하여 지속력 있는 경쟁력을 유지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한편, EU의 생산 설비 확충 노력 속에 한국 반도체 업체의 진출 가능성도 예상된다. 반도체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기업의 정부 차원의 발굴과 지원으로 육성 후, 경쟁력이 강화된 한국 소부장 기업이 EU가 아직 역량이 부족한 후공정 장비 분야에 진출하는 선의의 경쟁자 전략이 있을 수 있다. 물론, 경쟁력 있는 유럽의 RnD와 한국의 생산 역량을 바탕으로 반도체 성장 기반 강화를 위한 양자간 협력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지속가능한 반도체 생태계를 함께 이끌어 나아가는 공존과 공생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 규 완, Yonsei-EU JMCE 인턴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국제대학 아시아학과 학사과정
문의: 02 2123 8156 | kyuwan5420@yonsei.ac.kr
[1]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22). 유럽 반도체 법안의 주요 내용 및 전망 https://www.kiep.go.kr/gallery.es?mid=a10102030000&bid=0004&list_no=9973&act=view
[2] 국회도서관 최신외국입법정보. (2023). 유럽연합(EU)의 반도체법 (Chips Act), (2023-22호). Retrieved from https://www.nanet.go.kr/cmmn/file/fileViewer.do
[3] The European Chips Act. (n.d.). Retrieved from https://www.european-chips-act.com/
[4] KOTRA. (2022). 유럽반도체법 주요 내용 및 영향. Retrieved from http://dl.kotra.or.kr/pyxis-api/1/digital-files/fcf6cfbe-8498-4d88-86d5-60997da515a0
[5] 산업통상자원부. (2023). EU반도체법 3자 협의 타결, 국내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 보도참고자료.